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이 '무엇을(What)' 개발하느냐에서 '어떻게(How)' 전달하느냐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위산의 공격을 견디며 목표 지점까지 약물을 운반하는 로보틱 알약부터, 병원 침상에서의 해방을 이끄는 피하주사(SC) 제형 변환 기술까지. 2026년 현재 글로벌 제약 시장은 약물 전달 시스템(DDS) 플랫폼을 선점하려는 빅파마들의 거대한 전쟁터다. 본지는 3편의 기획 시리즈를 통해 항체 치료제의 경구화 원리와 정맥주사(IV)의 SC 제형 전환이 바꿀 의료 현장, 그리고 글로벌 표준을 재설계 중인 K-DDS 기업들의 비즈니스 전략을 집중 조명했다. <편집자 주>
[상] '먹는 항체'는 어떻게 위산 공격을 견디는가: '트로이 목마'가 된 알약
[중] IV에서 SC로, '제형 전환'이 병원을 집으로 옮긴다
[하] 한국 DDS 기술, 글로벌 빅파마의 '필수 파트너'로 부상
(AI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최근 제약 시장의 핵심 격전지는 병원 내부가 아닌 병원 밖에 있다. 그동안 정맥주사(IV)로만 투여가 가능했던 면역치료제들이 피하주사(SC) 제형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IV to SC' 전환은 단순한 투약 편의성 개선을 넘어, 수십조 원의 매출이 걸린 특허 장벽을 다시 쌓는 글로벌 빅파마의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 피부 밑 공간을 여는 분자 열쇠,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인체 피하 조직은 정맥과 달리 약물이 들어갈 공간이 좁고 단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분자량이 큰 항체 의약품을 한 번에 대용량으로 주입할 경우, 조직 저항으로 통증이 발생하고 흡수율 또한 현저히 떨어진다. 이 물리적 장벽을 허무는 마법의 열쇠가 바로 인간 히알루로니다제(Human Hyaluronidase) 기술이다.
이 효소는 피부 속 세포 간 결합을 유지하는 히알루론산을 일시적으로 분해하여 약물이 퍼져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이 기술 덕분에 기존에 2~3시간 동안 병상에 누워 맞아야 했던 정맥 투여를 단 5분 내외 피하 주사로 끝낼 수 있게 됐다.
미국 할로자임(Halozyme)이 독점하던 이 플랫폼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기업은 다름 아닌 한국의 알테오젠이다. 알테오젠은 자체 개발한 기술(ALT-B4)로 MSD(Merck)의 면역관문 억제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의 생명력을 연장하면서 2026년 현재 글로벌 기술 이전(L/O) 경쟁은 한층 더 가열되고 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글로벌 빅파마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여해 SC 제형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실익 때문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에 맞춰 SC 제형을 출시하면, 환자들을 자연스럽게 기존 IV 제형에서 새로운 SC 제형으로 유도(Switching)할 수 있다. 이는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시장 진입을 차단하고 독점 점유율을 10년 이상 연장하는 강력한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이 된다.
◆ 제형에 따른 투여 환경 비교
제형
정맥 주사(IV)
피하주사(SC)
투여 장소
병원(의료진 필수 상주)
자택 또는 의원(자가 투여 가능)
투여 시간
최소30분~ 3시간 이상
2분~ 5분 이내
환자 편의성
낮음(이동 및 활동 제약)
높음(일상 생활 중 즉시 투여)
의료 시스템
입원료, 처치료, 인건비 발생
사회적 비용 및 의료 자원 절감
◆ 디지털 헬스케어의 과제와 현실
기술 진보는 약물 제형을 넘어 투약 기기인 '스마트 오토 인젝터(Smart Auto-injector)'로 확장되고 있다. 자가 주사 기기에 센서를 부착해 투여량과 시간을 기록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 적용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여전히 '실효성 검증'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기기가 기록한 데이터를 블루투스로 전송하더라도, 이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의료 인력과 데이터 보안 가이드라인은 정립되지 않았다.
환자 편의성 측면에서도 명암이 엇갈린다. 부작용 위험이 낮은 유지 요법 단계 환자들은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일 수 있게 됐지만, 고가 스마트 기기 비용 부담과 복잡한 디지털 기기 조작은 고령 환자들에게 또 다른 장벽이다. 가정에서 중증 질환을 관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데이터 기반 보조 수단일 뿐 정밀 진단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국내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환자 투약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점은 고무적이지만, 데이터 신뢰성과 응급 상황 발생 시 책임 소재 문제는 여전하다"며, "스마트 기기 보급보다 중요한 것은 병원밖에서도 급성 부작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병원 중심 관리 네트워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