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이 만든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에 강력한 경쟁자 '아제투칼너'(Azetukalner)'가 등장,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 놓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Epilepsy) 신약 '엑스코프리(Xcopri, 성분명 세노바메이트·cenobamate)'가 출시 이후 처음으로 강력한 경쟁자를 맞닥뜨렸다. 상대는 캐나다 제논파마슈티컬스(Xenon Pharmaceuticals)가 개발한 차세대 신약 '아제투칼너(Azetukalner)'다.
제논파마슈티컬스가 지난 3월 9일 발표한 글로벌 3상 임상 탑라인 결과에 따르면 '아제투칼너' 고용량 투여군은 발작 빈도를 기저치 대비 대폭 줄이며 위약군과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제논파마슈티컬스 측은 이번 결과를 두고 "뇌전증 중추 임상 역사상 최고의 효능"이라고 자평했으며, 발표 당일 주가는 44% 급등했다.
기전과 처방 방식 모두에서 기존 약물들과 궤를 달리하는 '아제투칼너'가 시장에 진입할 경우, '엑스코프리'가 구축해 온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탑라인 결과란 임상시험 종료 직후 핵심 평가지표를 중심으로 공개하는 1차 결과 요약본으로, 전체 데이터는 오는 4월 19일 미국신경과학회(AAN) 연례학술대회에서 정식 발표할 예정이다.
◆ 한계 뚜렷했던 기존 뇌전증 치료제
전 세계 7000만 명, 국내 약 36만 명이 앓고 있는 뇌전증은 반복적인 발작이 특징인 만성 신경계 질환으로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발작을 멈추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무려 24종이 넘는 신약이 개발됐지만 큰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1990년대 이전에 등장한 1세대 약물 '카르바마제핀(carbamazepine)'과 '밸프로에이트(valproate)' 등은 발작 억제 효과가 확인됐지만 독성과 부작용이 심해 장기 복용에 한계가 있었다.
이어 1990년대에 등장한 2세대 약물 '라모트리진(lamotrigine)'과 '레비티라세탐(levetiracetam)' 등은 내약성과 안전성을 개선했고, 2000년대 들어 등장한 3세대 약물 '라코사미드(lacosamide)'·'브리바라세탐(brivaracetam)'·'페람파넬(perampanel)' 등은 기존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약물 난치성 환자를 겨냥해 기전을 다양화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전체 환자의 약 3분의 1은 어떤 약을 써도 발작이 잡히지 않는 난치성 상태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세대의 약물이 나올 때마다 치료 옵션은 늘었지만, 환자 3명 중 1명은 치료 사각지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 뇌전증 치료의 새 지평 연 '엑스코프리'
이 답답함을 풀며 등장한 약물이 바로 국산 신약 '엑스코프리'다. '엑스코프리'는 지난 2019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며 이 공백을 파고들었다. 뇌의 흥분성 신호를 전달하는 나트륨 채널을 차단하는 동시에, 신경을 억제하는 감마 아미노뷰트릭 산(GABAA) 수용체를 활성화하는 독특한 이중 기전을 내세웠다. 1990년 이후 허가된 항발작제(anti-seizure medication)들이 임상 3상에서 대부분 3% 미만의 완전발작소실률(Seizure Freedom Rate, 약을 투여한 뒤 발작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환자의 비율)을 기록한 것과 달리, '엑스코프리'는 최대 용량군에서 무려 21%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뇌전증 치료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러한 뛰어난 약효를 바탕으로 '엑스코프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그 입지를 더욱 탄탄히 다지고 있다. 최근 본지가 단독 보도한 것처럼, SK바이오팜은 미국 보훈부(VA)와 735억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해 2026년 3월부터 5년간 미국 재향 군인에게 '엑스코프리'를 독점 공급하게 됐다. 또한 올해 초 이탈리아 공보험 시장에 진입해 최상위 등급인 '클라쎄 A(Classe A)'를 부여받고 3600억 원 규모의 현지 시장을 확보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무기한 시판 허가를 취득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지난해 11월 41호 국산 신약으로 품목 허가를 받아 동아에스티를 통해 올해 정식 출시를 앞두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는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 전혀 다른 기전 및 편의성 갖춘 '아제투칼너'
지금까지의 상황은 '엑스코프리'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아제투칼너'는 '엑스코프리'와 전혀 다른 작용 기전과 처방 편의성을 무기로 '엑스코프리'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을 끈다. '엑스코프리'가 신경세포의 흥분 신호를 끄는 방식이라면, '아제투칼너'는 특정 칼륨 통로(KV7 채널)를 열어 신경세포 자체에 브레이크를 거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취한다. 작용점이 다르기 때문에 기존 약물에 반응하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전 개발 약물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처방 편의성에 있다. '엑스코프리'는 우수한 약효에도 불구하고 이상 반응을 예방하기 위해 최대 12주에 걸쳐 서서히 약물 복용량을 늘려가는 이른바 '용량 최적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반면 '아제투칼너'는 이러한 복잡한 조절 과정 없이 첫날부터 즉시 치료에 필요한 목표 용량을 투여해도 안전해, 뇌전증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들도 감기약처럼 손쉽게 처방할 수 있다.
◆ 세계적 권위자도 인정한 '아제투칼너'의 파격적 임상 데이터
제논의 '아제투칼너' 파이프라인 정보. 국소 발작 적응증은 이미 임상 3상(X-TOLE2/3) 결과를 발표하고 상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제논파마슈티컬스)실제 임상 데이터가 보여준 파괴력도 상당하다. 이번 3상 임상에서 '아제투칼너' 고용량 투여군은 12주 시점에서 월간 국소 발작 빈도를 기저치(Baseline) 대비 53.2% 감소시켜, 위약군(10.4%)과 40%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뇌전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재클린 프렌치(Jacqueline A. French) 뉴욕대 랑곤 의대 교수는 '엑스코프리'를 유일한 예외이자 동급 약물로 직접 거론하며, "'아제투칼너'가 보여준 완전발작소실률은 '세노바메이트'를 제외한 어떤 항발작제에서도 보지 못한 수치"라고 평가했다.
◆ 2028년 글로벌 뇌전증 시장 '운명의 대결' 예고
아제투칼너 임상 3상(X-TOLE2) 주요 데이터 요약 (제논파마슈티컬스 자료 헬스코리아뉴스 재구성)헬스코리아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아제투칼너'는 올해 3분기 FDA 신약허가신청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변이 없는 한 2027년 하반기 중 품목허가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측이 기대하는 '아제투칼너'의 시장 출시 시기도 내년 하반기다. 따라서 오는 2028년이 되면 두 신약의 운명적 대결이 글로벌 시장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약효와 편의성이다. '엑스코프리' 역시 실제 임상데이터(RWD) 등에서 다른 3세대 약물들을 압도하는 효능을 거듭 입증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이상 반응 발생률과 서서히 복용량을 늘려야 하는 긴 용량 최적화 과정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독보적인 약효로 이미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엑스코프리'와 초기부터 곧바로 최적의 용량을 처방할 수 있는 '아제투칼너'가 펼칠 시장 경쟁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