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조 달러 시장의 대격변… '자국 우선주의'가 재편하는 2026 지형도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이 유례없는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4년 1조 6700억 달러(약 2353조 원) 규모였던 전 세계 의약품 매출은 매년 6.2%씩 성장해 2034년 3조 달러(약 4407 조원)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령화에 따른 암, 당뇨, 관절염 등 만성질환 치료 수요 증가와 조직공학, 유전자 치료, AI 신약 개발 등 공급측 혁신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을 향한 국가 간 경쟁은 단순한 시장 논리를 넘어섰다. 미·중 경쟁과 팬데믹을 거치며 의약품은 국가 생존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격상됐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 유럽의 공급망 요새화, 중국의 디지털 굴기가 교차하는 2026년은 한국 제약산업에도 운명을 건 '숨가쁜 시간'이 될 전망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2026 제약바이오 산업 전망' 보고서와 본지 취재 결과를 토대로 3회에 걸쳐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편집자 주>
(上) '트럼프 관세'라는 파도… 미국 시장, '협상' 아니면 '장벽'이다
(中) '법적 요새' 쌓는 유럽과 'AI 굴기' 가속하는 중국의 반격
(下) K-바이오의 생존 전략: '관세 돌파'와 '혁신 투자'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이 유례없는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4년 1조 6700억 달러(약 2353조 원) 규모였던 전 세계 의약품 매출은 매년 6.2%씩 성장해 2034년 3조 달러(약 4407 조원)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회에 걸쳐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시장 점유율 47.8%)은 2026년 '트럼프 2기'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거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19년부터 5년간 연평균 7.3%씩 성장하며 2024년 의약품 지출 4871억 달러를 기록한 시장이지만, 이제는 성장의 속도보다 '생존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관세를 레버리지로 한 '약가 인하' 압박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제232조(Section 232 of the Trade Expansion Act)' 관세를 앞세워 글로벌 제약사들과 위험한 거래를 시작했다. 이미 '화이자(Pfizer)',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일라이릴리(Eli Lilly)',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 등 미국 제약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기업들이 관세 유예를 대가로 약가 인하에 합의했다. 이는 관세가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협상 레버리지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에 대한 압박이 구체화되고 있다. 2026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의약품 관세를 25%까지 인상하겠다고 언급하며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미국의 제약바이오 수입 의존도가 43%에 달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관세 도입은 미국 내 수입 수요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 기지 확보를 통한 관세 우회나 정부와의 개별 협상을 통해 이 파고를 넘어야 하는 처지다.
◆비만치료제가 견인하는 압도적 성장세
불확실성 속에서도 시장을 이끄는 것은 당뇨 및 비만 치료제인 'GIP/GLP-1' 제품군이다. FDA는 '위고비(Wegovy)'와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 등에 신속 심사 방침을 내렸으며, 이는 소비자 접근권을 획기적으로 높일 전망이다. IQVIA는 접근성이 개선된 긍정적 시나리오에서 2029년 미국 비만약 시장 규모가 기존 전망치(600억 달러)를 훌쩍 넘긴 840억 달러(약 115조 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제조사들이 'TrumpRx' 정책에 따라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점과 공공 의료보험 축소(OBBBA 법안)로 인한 무보험자 증가(2034년 1000만 명 예상)는 장기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규제의 디테일, 기업의 부담으로
현장의 부담은 행정적인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제약업계는 현재 10자리인 '의약품 식별 코드(NDC·National Drug Code)'를 2026년 3월까지 12자리로 개정하도록 FDA에 촉구하고 있다. 기존 코드가 2032년 소진될 것에 대비한 조치이나, 개정이 지연될수록 기업들은 라벨링과 시스템 개편에 따른 막대한 비용 지출과 의약품 공급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시스템을 실제 운용해야 하는 유통업계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미국의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숫자 두 자리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제조부터 유통, 처방, 보험 청구에 이르는 전 과정의 IT 인프라를 동시에 갈아엎어야 하는 거대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을 경우 시스템 간 불일치로 인해 의약품 공급망에 일시적 마비가 오거나, 최악의 경우 환자에게 잘못된 약이 투여되는 안전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FDA는 업계의 이 같은 현실적 고충을 수용해, 지난 3월 5일 최종 규칙(Final Rule)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12자리 코드 시행 시기를 2033년 3월로 대폭 유예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조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시스템 개편 비용은 기업들에게 거대한 행정적 장벽으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