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으면서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진=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으면서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 세계 물류의 핵심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 지정학적 요충지 홍해, 물류 마비의 직격탄
아이러니하게도 분쟁 당사국인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수에즈 운하와 직접 맞닿은 영토는 점유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전 세계 공급망이 마비된 이유는 홍해 항로를 둘러싼 이들의 지정학적 영향력 때문이다.
우선 수에즈 운하는 반드시 홍해를 통과해야만 진입할 수 있는 구조다.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의 남쪽 입구인 홍해 길목에 최남단 항구도시이자 핵심 해군 기지인 에일라트(Eilat)를 운용하며 이 항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란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은 홍해의 또 다른 급소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위협하며 이스라엘의 해상 숨통을 조이고 있다. 결국 직접적인 영토 점유 여부와 상관없이, 홍해의 남북단 길목을 틀어쥔 이들의 군사적 대립이 글로벌 의약품 물류를 멈춰 세우고 있는 셈이다.
수에즈 운하, 이스라엘 해군 기지, 예멘 후티 반군 거점, 홍해 항로 지도 [사진=AI 생성 이미지]# 희망봉 우회 항로, 물류비 상승과 공급 지연 초래
실제로 글로벌 공급망의 충격은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스위스의 MSC(Mediterranean Shipping Company)와 덴마크의 에이피 몰러-머스크(A.P. Moller-Maersk)를 비롯한 주요 컨테이너 선사들은 지난 1일(현지 시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홍해 항로 대신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대체 노선을 공식화했다.
문제는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항로가 기존 홍해 항로 대비 운송 기간을 최대 14일가량 지연시키며, 이는 저온 유지가 필수적인 '바이오의약품' 물류 체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제약·바이오 전문 분석 매체인 파마소스(PharmaSource)에 따르면, 과거 분쟁 당시 항로 우회에 따른 운송비 가중은 원료의약품(API)의 수급 불균형을 초래해 약 2~3%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복제약 기업 테바(Teva Pharmaceutical Industries)의 공급망 차질 여부에도 이목이 쏠린다. 테바는 전 세계에 광범위한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어, 이 지역의 물류 마비는 곧바로 글로벌 제네릭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원료비 상승의 승수 효과 … 환자 부담 가중 우려
언뜻 보기에 2~3%의 인플레이션은 미미해 보일 수 있으나, 의약품 공정 구조상 API 가격 상승은 가공 단계의 에너지 비용, 희망봉 우회로 인한 천문학적 물류 추가분, 그리고 변동성이 극심한 플라스틱 패키징 원가와 결합하며 복리적 비용 상승을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완제약 단가가 원료비 상승 폭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승수 효과가 나타나며, 공급망이 무너진 시장에서 환자들이 체감하는 실질 가격은 치솟게 된다. 실제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보고서는 과거 희망봉 우회 운행 시기에 공급품 가격이 일시적으로 5배 이상 폭등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독자적인 공급망 인프라가 미비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이러한 물류 쇼크가 공공 보건 체계의 붕괴로 이어지는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재의 중동 분쟁은 단순한 지역적 충돌을 넘어, 글로벌 의약품 약가 상승을 유도하는 강력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최종 소비자인 환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