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곡동 일양약품 본사[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일양약품이 4가 독감백신의 접종 연령을 영유아까지 확대하기 위한 후속 임상시험을 난항 끝에 마치고도 웃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정부의 국가 예방접종 사업(NIP)이 3가 백신으로 회귀하면서 애써 확보한 경쟁력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일양약품은 지난달 '일양플루백신4가주(성인용 제품명: 테라텍트)'의 임상 3상 시험 최종 피험자 관찰을 마치고 임상시험 종료를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했다. 이번 임상은 생후 6개월 이상 만 3세 미만의 건강한 영유아를 대상으로 일양플루백신4가주의 면역원성과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진행했다.
국내 독감백신 수요는 공공분야인 NIP와 민간 분야로 나뉜다. 이 중 공공분야는 생후 6개월~13세 영유아와 임신부, 그리고 65세 이상 노인을 커버하고 있다. NIP가 대부분의 실수요를 커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양약품의 4가 독감백신은 만 3세 이상 소아 및 청소년과 성인에게만 접종이 허가돼 있어, NIP 시장의 핵심인 영유아 물량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일양약품은 4가 독감백신의 접종 연령을 3세 미만 영유아로 확대하기 위한 3상 임상시험계획을 지난 2020년 식약처로부터 승인받았는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피험자 모집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시험을 철회한 바 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코로나19가 엔데믹에 접어들자 3세 미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4가 독감백신 3상 임상시험에 다시 돌입, 2년여 만에 시험을 마치고 연령 적응증 확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이번 임상 종료로 일양약품은 GC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선두 업체들과 동등하게 전 연령층을 커버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다.
문제는 글로벌 보건 환경의 급작스러운 변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인플루엔자 B형 야마가타(Yamagata) 계통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검출되지 않으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말 백신 조성에서 이를 제외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 질병관리청도 이번 2025~2026절기부터 NIP 백신을 기존 4가에서 3가로 전환했다. 일양약품 입장에서는 영유아 시장 진입을 위해 수년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4가 백신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는데, 때마침 시장이 3가 백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양약품이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한 임상시험이지만, 종료 시점이 정책 변경 시기와 맞물리며 빛이 바랬다"며 "4가 독감백신이 언제 다시 NIP에 포함될지 알 수 없는 만큼, R&D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녹록지 않을 것"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백신 전환 속도가 다른 국가를 통한 수출 확대를 고려할 수 있다"며 "그러나, WHO의 권고가 있었던 만큼, 영유아 연령 적응증을 추가하더라도 4가 백신의 해외 수요가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양약품은 올해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10년에 걸쳐 매출을 과대 계상한 혐의로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으며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상태로, 한국거래소는 일양약품을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으로 지정해 내년 3월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2026년 3월 상장 유지 여부 등에 대해 심사를 받게 된다.
이와 함께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달 초 일양약품에 회계처리 기준 위반 혐의로 과징금 62억 3000만 원을 부과했다. 또한, 오너 3세 정유석 사장과 김동연 부회장 등 2명의 공동대표와 임원에 대한 해임 권고, 6개월 직무정지 및 3년간 감사인 지정 등 중징계를 결정했다.
실적도 하락세에 빠졌다. 올해 3분기 일양약품 당기 매출은 688억 원으로 전년 동기(691억 원) 대비 0.3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억 5774만 원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