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헬스코리아뉴스 D/B][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항체-약물 접합체(ADC)와 함께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방사성의약품(RPT, RadioPharmaceutical Therapy). 글로벌 시장에서는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플루빅토가' 출시 1년 만에 연 매출 1조 원을 기록했을 정도로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이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바이오벤처가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주도했는데, 지난해 SK바이오팜이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제약사들의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이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력과 개발 노하우를 갖춘 기업들이 연이어 참전을 선언하면서 국내 방사성의약품 산업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개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한국원자력의학원과 함께 '방사성동위원소가 표지된 항-HER2 항체-킬레이터 접합체와 이를 포함하는 약학적 조성물 및 이의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출원에 대한 지분율이 한국원자력의학원 84%, 셀트리온 16%인 것으로 볼 때, 셀트리온은 한국원자력의학원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셀트리온과 한국원자력의학원이 연구를 진행한 방사성동위원소가 표지된 항-HER2 항체-킬레이터 접합체는 HER2를 타깃으로 하는 항체 약물인 트라스투주맙(오리지널 제품명: 허셉틴) 또는 퍼투주맙(오리지널 제품명: 퍼제타)을 방사성동위원소인 루테튬-177(177Lu, 치료용) 또는 구리-64(64Cu, 진단용)와 'p-SCN-Bn-PCTA(이하 PCTA)'라는 자체 개발 킬레이터를 이용해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항체 약물이 암세포의 표면에 있는 HER2 단백질을 찾아가면 방사성동위원소가 베타선을 방출해 종양 세포를 사멸시키는 기전으로 암을 치료한다.
HER2 표적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어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낮은 표지 수율로 인해 추가적인 분리 정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임상시험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다. 이에 셀트리온과 한국원자력의학원은 방사성동위원소의 표지 수율을 높여주는 킬레이터 PCTA를 개발, 추가적인 분리 정제 과정 없이 곧바로 임상시험에 사용될 수 있는 우수한 표지율을 갖는 치료제를 완성해 실험을 진행했다.
회사의 출원 명세서를 살펴보면, 177Lu-PCTA-항-HER2 항체 접합체(방사선량: 1.48 메가베크렐·MBq)는 트라스투주맙과 퍼투주맙에 내성을 보이는 항-HER2 항체 저항성 유방암 세포 4종(BT474, SK-BR-3, KPL-4, JIMT-1)에서 HER2 발현 정도에 따라 40~60% 정도의 세포 살상 능력을 나타냈다. 위암 세포의 경우 전체 실험 세포 중 HER2 발현이 가장 높은 NCI-N87 한 종류를 사용했는데, 세포 살상 능력이 75%를 웃돌았다.
이러한 효과는 생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우측 옆구리에 JIMT-1 유방암 세포 또는 NCI-N87 위암 세포를 피하 주사해 유방암과 위암을 각각 유도한 종양 모델 생쥐에 12.95MBq의 177Lu-PCTA-항-HER2 항체 접합체를 한번 정맥 투여했다.
그 결과, 대조군은 종양 부피가 기존 대비 3배 이상 증가했으나, 177Lu-PCTA-항-HER2 항체 접합체 투여군은 28일이 지난 시점에서 종양 부피가 치료 전보다 현저히 감소했다. 이 기간 실험 대상 생쥐에서 유의한 체중의 감소는 관찰되지 않아 치료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관측할 만한 수준의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ADC와 같은 듯 다른 방사성의약품 … 정밀 타격형 방사선 치료 가능해져
노바티스 '플루빅토' 출시 당해 매출 1조 돌파 … 글로벌 개발 경쟁 '후끈'
방사성의약품은 몸속에 있는 특정 단백질만 찾아 결합하는 항체에 암세포를 죽이는 폭탄 같은 약물을 붙여 만든 치료제라는 점에서 ADC 약물과 매우 비슷하지만,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약물인 '페이로드(payload)'가 세포 독성 항암제가 아닌 방사성동위원소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싣고 가는 운반자가 항체이냐 저분자 화합물이냐에 따라 '항체 방사성의약품(Antibody Radionuclide Conjugate, ARC)'과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 Radioligand therapy)'로 나뉜다.
암의 3대 표준 치료법인 방사선 치료를 종양을 타깃으로 더욱 정밀하게 수행할 수 있고, 강력한 방사성동위원소를 페이로드로 사용해 ADC보다 효능이 우월하다는 점에서 전 세계 제약사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방사성동위원소는 반감기가 수 시간에서 수일로 짧고 취급이 복잡해서 방사성의약품 개발 진입 장벽은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안정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에 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지금까지 미국 FDA로부터 품목허가를 획득한 방사성의약품은 3개에 불과하다. 지난 2013년 바이엘의 '조피고(Xofigo)'가 최초의 알파선 방사성의약품으로 승인받았으며, 이후 노바티스가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 '루타테라(Lutathera)'와 '플루빅토(Pluvicto)'를 지난 2018년, 2022년 각각 허가받았다.
이중 플루빅토는 가장 성공한 방사성의약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시 당해 무려 9억 8000만 달러(한화 약 1조 3980억 원)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방사성의약품 가운데 처음으로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블록버스터로 올라섰다. 이 제품은 올해도 상반기에만 8억 2500만 달러(한화 약 1조 1768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플루빅토의 성공은 방사성의약품 개발 붐을 앞당겼다. BMS, 일라이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등 굴지의 제약사들은 방사성의약품 개발 기업들을 앞다퉈 인수하면서 관련 파이프라인을 늘려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팜, 퓨쳐켐, 셀비온 등이 방사성의약품 개발 속도를 높이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SK바이오팜, 'SKL35501' 개발 드라이브
셀비온·퓨쳐켐은 상용화 가시화 단계
SK바이오팜은 3대 신규 모달리티 중 하나로 방사성의약품을 설정하고, 지난해 홍콩 제약사 풀라이프 테크놀로지스로부터 도입한 후보물질 'SKL35501'의 개발을 진행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관련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L35501은 대장암·전립선암·췌장암 등 다양한 고형암에서 과발현되는 수용체 단백질 NTSR1을 표적하는 저분자 화합물에 악티늄-225(225Ac)을 탑재한 방사성의약품, 그중에서도 RLT에 해당한다. 전임상 시험에서 높은 항암 효과가 확인됐다. SK바이오팜은 현재 SKL35501의 1상 임상시험계획(IND) 제출을 준비 중이다.
퓨쳐켐은 전립선암 치료 방사성의약품 후보물질 'FC705'의 국내 3상 임상시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으며, 아직 환자 모집은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회사는 이번 3상 IND 승인을 기점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FC705에 대한 조건부 허가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FC705는 미국 2a상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셀비온은 전립선 특이 세포막 항원(PSMA) 타깃 전립선암 치료제 'Lu-Pocuvotide(177Lu-DGUL)'를 개발 중이다. 지난 9월 회사가 발표한 2상 임상시험 톱라인(주요 지표) 결과에 따르면, 177Lu-DGUL은 최종 객관적 반응률(ORR) 36%(28명), 완전관해(CR) 7명(9%), 부분관해(PR) 21명(27%)을 기록했다. 셀비온 역시 올해 안에 2상 임상시험의 최종데이터(CSR)를 받고 12월께 3상 조건부 허가를 신청한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