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연구개발(R&D)[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K-제약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성장·투자 유치·자금 회수(Exit)까지 이룰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보산진)은 최근 '일본 바이오 산업 과제와 정책 대응 방향 고찰'이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이 추진하는 '신약개발 벤처 생태계 강화 사업'을 예로 들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VC 중심 일본 투자 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신약 개발 벤처 생태계 강화사업의 한 예는 민관 합동 펀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신약개발 민관 공동 펀드를 조성했다. 정부 보조금 3500억 엔과 벤처캐피탈(VC) 투자금 3500억 엔을 합친 총 7000억 엔 규모 펀드다.
이 펀드에 참여하길 원하는 벤처 캐피탈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 5년사이 투자액 중 3분의 1 이상을 신약 개발 분야에 투자한 실적, 투자한 신약개발 벤처기업이 진행하는 임상시험을 VC로 지원한 실적, 투자처 신약개발 벤처기업에 이사를 파견한 실적 등이 있어야 한다.
투자처에 제약회사 등에서 의약품 개발 경험이 있는 인력도 갖추어야 한다. 실제 신약개발 성과를 낼만한 의지와 능력이 있는 벤처 캐피탈에만 참여 자격을 주겠다는 뜻이다.
10년 뒤 사업이 종료되면 벤처 캐피탈들이 현재(3500억 엔)의 2배 이상 규모로 자체 펀드를 만들어 결국 정부 보조금 없이도 규모가 같은 자금이 신약개발 벤처에 공급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 펀드가 신약개발 벤처기업을 선정할 때 평가하는 항목은 그 기업의 '사업 계획' '사업 취지와 정확성', '벤처 캐피탈 지원 계획', '사업 성과의 일본 내 환원' 등이다. 이 가운데 사업계획은 특히 '해외 시장 포함 여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 법인 등록으로 성장하는 모델 제시
일본은 기업공개(IPO) 이후 자금 고갈 문제,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를 인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IPO보다는 M&A를 거쳐 자금 회수를 더 활성화하는 전략과 특히, 당초 미국에서 IPO를 추진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일본 내 스타트업으로 등록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모델은 법·제도에서 여전히 해외 투자를 받는 데 한계가 있다. 일본 내에서는 출범한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상장하거나 FDA 승인 및 지적재산권 전략, 노하우 등을 얻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이밖에도 일본 내 벤처 캐피탈 만으로는 자금조달에 한계가 있고 IPO 이후에도 자금조달 문제가 잇달아 나오는 경우가 많다.
만약 신약개발 스타트업을 미국에서 시작하면 미국 벤처 캐피탈 투자를 받기가 더 쉽고, IPO 역시 미국 시장에서 할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여러 나라 제약사와 네트워크를 맺을 기회가 국내(일본) 대비 더 많아 결국 M&A 대상도 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M&A를 거쳐 자금 회수를 활성화하는 전략과도 연결된다.
미국 스타트업은 일본에서 의약품 승인이 지연될 수 있는 점, 짧게 볼 때는 일본에 대한 환원 효과가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한 기업이 미국에서 성장하면 결국 기업이 크는 데 더 유리할 뿐만 아니라, 길게 보면 이 같은 기업의 인적 노하우와 신규 투자가 다시 국내로 돌아와 국내 스타트업 창업도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일본 정부는 보고 있다.
한계 보완 위해 벤치마킹 필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지닌 오너 중심 경영 문화와 교수 중심 창업은 한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제약산업의 창업자 중심 기업 지배 구조는 창업자의 책임감 있고 과감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경우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만, 실패할 경우를 판단할 때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방해해 포트폴리오 관리 실패나 경영 위기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교수 중심 창업은 소수 후보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실패할 경우 Plan B가 없어 폐업으로 이어지기 쉽다. 기술 기반이 있더라도 사업화 역량과 경영 전문성 부족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국내 투자 시장의 자금 규모는 크지 않고, 신약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 조달이 어렵다. 높은 IPO 의존도로 인해 생태계 내 자금순환이 정체되는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일본도 똑같이 겪는 문제다.
보고서는 일본 사례를 통해 기술개발 → 창업 → 해외 진출 → 자금 회수 → 재창업 및 후속투자로 이어지는 단계별 선순환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의약품 관련 제도는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아 정부 주도 약가인하 정책이나 국민건강보험 제도 등에서 일본과 비슷하다"며, "일본 정부가 진단한 일본의 한계 역시, 국내(한국) 제약산업이 맞닦뜨린 문제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고, 정책 진단과 대응 방향에서 공통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신약벤처 생태계 육성 정책은 국내 유사정책을 수립할 때 충분히 의미있는 벤치마킹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