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 빌딩 전경[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종근당이 한때 주목받았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사그라든 면역 항암제를 다시 겨냥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다.
종근당은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CKD-512'의 1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 받았다. 시험은 진행성 또는 전이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단독 또는 펨브롤리주맙(제품명: '키트루다')과 병용한 'CKD-512'의 안전성, 약동학, 약력학 및 예비 유효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CKD-512'은 A2A 아데노신 수용체(A2AR)에 길항 작용하는 신약 후보물질이다. 타깃인 A2AR은 아데노신(Adenosine)에 의해 활성화되는 수용체로, 인체의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조절한다.
가령 A2AR은 운동 조절, 인지 기능, 감정 처리 등에 관여하는 뇌의 선조체(striatum)에 풍부하게 분포하며 도파민의 신호를 조절한다. 혈관 확장 및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 등의 기능도 담당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A2AR 길항제는 과도한 도파민 신호로 인해 발생하는 파킨슨병의 치료제 및 심혈관계 질환 치료제로 활용되고 있다.
또 다른 주요 기능은 면역 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 수용체는 면역관문 단백질과 유사하게 면역 세포의 활성을 저해하여 과잉 염증 반응을 제어한다. 그러나 암세포 또한 아데노신의 과도한 발현을 유도하여 면역 세포의 공격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A2AR의 면역 억제 기능은 1972년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그간 면역 항암 치료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 그저 유망한 표적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미국 MSD가 자사의 PD-1 면역관문 억제제인 '키트루다'를 선보이면서 비슷한 기전의 A2AR 길항제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졌다.
'키트루다'는 면역 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PD-1 면역관문 단백질을 차단하여 면역 세포의 암 공격력을 높이는 기전이다. 이와 유사하게 A2AR 길항제는 종양미세환경(TME)에서 A2AR에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면역 세포의 암 공격력을 증폭시킨다. 일종의 면역관문 억제제로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면역 치료용 A2AR 길항제 개발에 나선 곳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AZ)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16년 6월 자사의 A2AR 길항제 후보물질 'AZD-4635'의 1상에 착수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다. 용법은 면역관문 억제제와의 병용이었다.
참고로 'AZD-4635'는 본래 일본 소세이(Sosei, 현재 사명: 넥세라 파마·Nxera Pharma)가 개발하던 것으로, AZ는 지난 2015년 8월 소세이와 'AZD-4635'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AZ는 2018년 5월 'AZD-4635'의 2상을 진행하며 순조롭게 개발을 이어가나 싶었지만, 2상에서 면역관문 억제제 단독요법 대비 'AZD-4635'+면역관문 억제제 병용요법의 치료 유효성에 통계적인 차이를 증명하지 못했다. 이에 AZ는 개발을 중단, 2021년 소세이 측에 'AZD-4635'의 권한을 반환했다.
다만 통계적 유효성을 제외하고 안전성 및 내약성 측면에서 'AZD-4635'는 큰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임상 디자인이나 개발의 방향을 소폭 수정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키트루다' 단독요법의 인기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병용요법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A2AR 길항제는 면역 항암제로서의 기대감은 사그라들고, 파킨슨병 치료제나 심혈관계 치료제로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종근당은 이러한 공백을 포착하고 면역 치료용 A2AR 길항제 'CKD-512'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는 것이다. 이 회사는 2024년 공시를 통해 "동일 기전으로 승인된 치료제가 부재하다"며 'CKD-512'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델브 인사이트(Delve Insight)는 올해 2월, 면역관문 억제제의 시장 규모가 오는 2032년 1000억 달러(한화 약 145조 원)에 달할 예정인데, 이 중 새로운 면역관문 억제제에 대한 수요가 시장의 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종근당이 'CKD-512' 개발에 성공, 새로운 면역관문 억제제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