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기자[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정부가 2026년 시행을 예고한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개편안은 대한민국 보건 안보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도박이다.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과학적 검증 절차를 스스로 포기한 '졸속 행정'에 불과하다. 2006년 도입 이후 20년간 지켜온 '선별등재(포지티브)' 원칙을 단칼에 베어내고 제약사, 특히 다국적 제약사의 이윤을 위해 건강보험의 빗장을 열어주겠다는 선언이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 과학적 검증 생략이 부를 환자의 위험과 재정 파탄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평가를 사실상 생략하고 100일 이내에 등재를 완료하겠다는 것이다. 희귀의약품은 태생적으로 임상 데이터가 부족하다. 조건부 허가를 받은 약제 상당수가 최종 단계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검증 없는 등재는 환자를 살아있는 실험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재정적 파국도 불 보듯 뻔하다. 연간 수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약제들이 '프리패스'로 건보권에 진입할 경우 수조 원의 추가 재정이 소요된다. 사후 통제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등재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정책은 국민이 낸 소중한 보험료를 눈먼 돈으로 취급하는 무책임의 소치다.
# 글로벌 빅파마만 배 불리는 '사대주의적' 약가 정책
가장 심각한 지점은 이 정책의 실질적 수혜처다. 신속등재와 2028년 확대 예정인 '혁신 신약' 카테고리는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규 물질을 쏟아내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가져올 고가 신약에는 레드카펫을 깔아주면서, 정작 국내 제약사들이 주력하는 기초 필수의약품의 공급 중단 위기는 방치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에 돌아올 실익도 전무하다. 정부는 제네릭 약가 인하를 통해 신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주 수익원을 깎아 다국적 기업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전형적인 '재 뿌리기' 정책이다. 혁신형 제약기업 예외 조항을 뒀다지만 대형사 위주의 면피용일 뿐, 대다수 국내 중소·중견 제약사들은 고사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 보건 안보의 우선순위 바로 세워야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속'이라는 독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진정한 보건 안보는 해외 신약의 빠른 도입이 아니라, 효과가 입증된 약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고 국내 생산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데서 시작된다. 검증되지 않은 외산 신약에 건강보험 재정의 열쇠를 통째로 넘겨주는 것은 주권 포기나 다름없다.
환자의 생명권과 국민의 혈세를 담보로 벌이는 위험한 실험이 되어서는 안된다. 최근 5년간 불거진 1418건의 수입의약품 공급 중단 사태는 외면한 채, 글로벌 기업의 민원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는 약가 개편안은 전면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